Saint Henry Of The Lost And Found (Korean)

헨리는 말을 더듬었다. 9월의 어느 이른 아침 4학년 이해력 수업에 처음 들어갔을 때 헨리가 말을 더듬는 것을 알았다. 헨리는 책상에 앉아 순교자들에 관한 책을 소리내어 읽고 있었고 바커 선생님은 그런 헨리의 어깨 뒤를 배회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헨리는 모두 문쪽으로 등을 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고 교실에 그 외에 다른 학생은 없었다. “열 명의 캐-캐-캐나다 성인들이 카-카-카톨릭 교-교-교회 안에 있습니다. 8명은 시-시-신 프랑스 저-정-정착 중 교-교-교회가 수-순-순교자로 여기는 우-수-수사들이-이-이었습니다.” 바커 선생님은 헨리의 말을 끊지 않고 이따끔씩 “음~” “네~” 등 추임새만 넣을 뿐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헨리의 목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었다. 헨리는 반 친구들 누구와도 이야기 나누지 않았고 선생님들도 자신들의 질문에 헨리가 대답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가끔씩 헨리가 유령처럼 학교 복도에 출몰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애정에서 기인한 두려움에 대해 댓가를 치르기 거부하는 유령 마냥.헨리와 나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 헨리는 평생 미시사가에서 살았고 이동이라고 해봤자 미시사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산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그 해가 캐네디언 마터즈에서 보낸 첫 번째(이면서 마지막) 해였고 헨리는 유치원때부터 캐네디언 마터즈에 다녔다. 나는 간단한 영어 문장도 거의 구사할 수 없는 이민자였고 헨리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폴란드계 캐네디언이었지만 폴란드어는 거의 구사할 줄 몰랐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우리가 학교에 있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나중의 이유다. 영어를 속 시원히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의도치 않은 결속력을 맺는데 윤활유 역할을 해주었다. 쉬는 시간에 우리는 종종 다친 동물들 마냥 운동장 변두리를 빙빙 돌며 서로를 쫓았다. 헨리가 주시하는 것을 피하며 의도치 않게 깊게 드리워진 그의 고독함은 무엇인지 캐내기 위해 나를 가장(假裝)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런 시간은 바람이 세게 불던 어느 10월 아침,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갑작스레 바람이 불더니 사방으로 숙제를 흩뿌리며 내 바인더를 날려버렸다. 숙제들을 쫓아 간신히 게 중 한 장을 발로 밟으며 이미 저만치 날아가고 있는 나머지 종이를 맥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내 숙제에 일어난 일을 바커 선생님께 설명할 것을 생각하자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그 때 운동장 반대편을 가로질러 나에게 걸어오는 희미한 물체가 보였다. 여윈 몸에 둘러진 옷이 바람에 펄럭이며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걸어오고 있는 헨리였다. 하얀색 종이가 헨리의 손에 꼭 쥐어져 있었다. 헨리가 나에게 내 숙제를 건네주고 나는 고맙다고 하였다. 헨리는 웃어 보였고 교실로 조용히 걸어 갔다. 우정은 그렇게 잉태됐다.
4학년은 어린아이의 장난이 젊은날의 객기로 굳어지는, 그리고 약자를 괴롭히는 골목대장이 어떤 분위기 속에서 한 때 단지 무자비한 공포 대상에 불과했던 게 현실화 되는 듯한 시기이다. 크리스마스 하루 전 날 점심 시간에 나는 헨리가 존경하는 바커 선생님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기 위해 함께 쇼핑 몰에 갔다. 바커 선생님은 헨리가 4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는 법정대리인이었다. 주차장을 지나가고 있을 때 4명의 아이들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길을 방해했다. 그 패거리의 대장은 학교 불량배 조디였다. 한 크기 하는 얼굴과 새까만 눈을 가진 거구의 백인 조디는 암암리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절도광이었다. 조디는 교실보다 쇼핑 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얘들아 여기 좀 봐. 노랭이랑 지체아랑 같이 있네!” 다른 패거리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조디는 장갑으로 내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너네 지금 쇼핑 몰에 뭐 훔치러 가는거지? 그치?”라고 말했다. 조디의 숨이 벌렁 거리는 콧구멍 밖으로 담배 연기처럼 요동쳤다. 주위 모든 긴장감이 내 얼굴와 조디 얼굴 사이의 얇은 공간으로 집중되는 듯 했다. 바로 그 때 적어도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헨리가 그 공간으로 한 발자국 들어왔다. 헨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쓰고 있던 모자를 약간 벗더니 시선을 조디에게 고정했다. “할 말이라도 있냐? 멍청아?”라고 말하는 조디는 좀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몇 겁의 시간처럼 느껴진 침묵을 깨고 헨리가 입을 열었다. 가엾은 심정이 묻어나며 명쾌하게 그리고 똑똑히 발음 된 헨리의 말은 마음 속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끌어져 올라온, “그렇게 살지마”였다. 비록 헨리의 말은 속삭임에 가깝긴 했지만 그 두 마디는 지구를 뒤흔들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따끔씩 주자창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해 그 곳에 있던 아이들은 돌처럼 굳어 서 있었다. 헨리는 여전히 조디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다시 모자를 매만지더니 다른 아이들을 밀치고 가던 길을 갔다. 나는 헨리를 따라갔다. “이 머저리가!”는 조디가 마지막으로 남긴 애처로운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 조차도 자동차와 사람들 말 소리에 희미했다. 그 날 밤 침대에 누워 헨리의 용기와 그 날의 공기만큼이나 상쾌했던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자 내가 헨리를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 * *
봄 방학이 왔다 갔지만 헨리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바커 선생님께 가서 헨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여쭈어보았다. 선생님은 내 질문에 놀란 기색으로 “나는 네가 헨리와 친하다고 생각했었는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방학동안 헨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주셨다. 헨리가 교회에서 페인트칠을 한 후에 병원에 실려가 몇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그가 신경계 관련 희귀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했다. 바커 선생님은 그 병이 헨리의 아버지가 평생 겪었던 것과 같은 병이라고 했다. 헨리는 집에서 요양 중이라고 했지만 바커 선생님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요양’이란 단어는 선생님이 말하려 했던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던 했던 단어들은 기껏해야 병 그리고 죽음과 관련한 단어들로 참 애매한 의사 소통 수단이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헨리의 집 주소를 물었다.헨리의 집은 학교에서 세 블럭 떨어진 곳에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헨리의 할머니였던 것 같은 한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헨리가 있느냐고 묻자 시선을 아래로 떨어 뜨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몇 발자국 비켜주었다. 집 안에서는 소세지와 마늘을 넣고 삶은 듯한 썩은 우유 냄새가 났다. 거실을 지나 걸었다. 한 쪽 벽에는 로자리오가 달린 커다란 나무 십자가가 걸려있었고 다른 한 쪽 벽에는 비닐로 감싸진 쇼파 위로 잘생긴 젊은이의 흑백 졸업사진이 걸려 있었다.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은 행복하고 성공적인 미래를 다짐하고 있는 듯했다.그 분이 바로 헨리의 아버지구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번뜩 스쳤다. 할머니는 헨리가 하얀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리고 누워있는 방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헨리는 자고 있었다. 이불 위로 헨리 몸의 윤곽이 들어났다. 마지막으로 본 날 이후로 헨리는 놀랄만치 몸집이 작아져 있었다. 항상 몸집이 작기는 했지만 헨리는 어느 평범한 2학년 아이의 몸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헨리 옆, 노란 불빛 아래 탁상 위에는 성경책이 놓여있었다. 이해력 수업 시간에 쓰던 순교자들에 관한 책은 헨리의 오른손에 꼭 붙들어져 있었다. 헨리는 천천히 눈을 뜨고 초점을 맞추는 듯 눈동자를 움직이더니 내게 창백한 미소를 보였다. 나는 그 때서야 이 전까지 헨리의 눈동자 색깔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록색의 눈동자 중 오른쪽이 왼쪽보다 약간 더 푸른 듯 했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 어-어-엄마 봐-봤-봤어?” 헨리의 눈썹이 침대 반대편에 앉아 있는 중년의 여성 쪽으로 들렸다. 헨리의 어머니는 서른 다섯살 보다는 더 되보이긴 했지만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베어 있었다. 평범한 시간의 흐름 때문이 아닌 자신의 인생에 닥친 가혹한 고통 때문에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남편의 잔혹한 사고를 목격할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이제는 하나있는 아들 마저도 자신의 눈 앞에서 쇠약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녀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임이 분명했다. 젊은 시절 헨리의 어머니가 아름다웠다면 누구도 그 당시 헨리 옆에 앉아 꼼짝 않던 얼굴을 보고 젊은 날의 그녀를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헨리의 어머니는 자신이 움켜 잡을 수 있었던 인생을 넘어 그것을 포기한 채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였다. 함께 있는 동안 헨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오히려 헨리 보다도 더 말을 아꼈다. 아홉살도 다른 이의 불행한 일은 애써 건드리지 않으려 할 때 상투적인 빈 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안다. 예정되어진 상실이 임박해졌음을 느꼈을 때 연민과 슬픔의 독특하고 개인적인 표현은 그 후에 온다. 시간이 늦어 인사를 한 뒤 곧 다시 보러 오겠다고 말했을 때의 헨리 표정, 맘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고마움으로 빛이 나던 헨리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거실에서 헨리의 어머니가 종이 쪽지에 무언가를 급히 쓰더니 내게 건네주었다. “헨리가 항상 네 얘기를 하더구나. 너는 그 아이의 유일한 친구란다. 언제든지 전화하렴. 헨리가 네 목소리를 들으면 무척 기뻐할거야.”라는 말과 함께.
헨리는 그 해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다시 찾아가지도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 해 여름 우리 가족은 그 시골마을 떠나 혼잡한 도시의 심장으로 다시 한 번 더 이사했다. 헨리에 대한 것은 거의 잊어버렸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느라 정신 없었고 바뀐 환경에 내 자신을 적응시키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교과서가 헨리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데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캐나다의 순교자들에 관한 이해력 시간 수업 교재에 노랗게 바랜 쪽지 하나가 꽂혀 있었다. 토론토 시내에 있는 나의 집에서 헨리네 전화 번호를 눌렀고 이윽고 반대편 전화선 끝에서 들려오는 헨리 어머니의 목소리는 놀랍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투는 그 동안 변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 때문인지 무겁게만 느껴졌다. 나의 영어가 훨씬 나아졌다는 것과 내 어머니가 나를 많이 자랑스러워 하겠다는 가벼운 말을 건넸다. 마치 자신의 아들 헨리가 침대에서 시들어가며 누워있는 동안 우리가 거실에서 나눴던 마지막 대화를 계속하는 듯 했다. “너는 헨리의 유일한 친구였단다. 전화해주어서 고맙구나.”라고 그렇게 헨리의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내게 전했다.
헨리는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후 1년쯤 뒤에 세상을 떠났다. 헨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학교 사람은 바커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고작이었다. 전화를 끊고 아주 오래 전 내 친구 세인트 헨리가 쇼핑 몰 밖에서 세상에서 제일 못난 아이들과 나 사이에 한 발자국 끼어 들던 장면을 회상했다. 그 쇼핑 몰 밖에서 내가 감당해야만 했던 순간을 자신이 대신 짊어진 헨리를 회상했다. 속삭임이었지만 마치 세상 꼭대기에서 우리 주위에 서 있던 사람뿐만 아니라 성인 그리고 죄인,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 같았던 헨리의 그 말, “그렇게 살지마”, 이 두 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이는 마치 헨리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은 것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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