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Into Song (Korean)

14살이 되던 해 여름, 이미 오래 전 소식이 끊긴 아버지, 입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 죽을 힘을 다해 일하는 어머니, 채워지지 않는 부모의 빈 자리로 인해 사나워지고 드세진 삼형제들이란 그림자는 내게 어떤 피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음 일러주는 신호등과 같았다. 그 해는 내가(사실상 내가 알던 다른 모든 이들 또한 그랬듯) 십대로서 가지는 막연한 환상과 만들어진 고뇌를 두고 애타하던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이해한다면 내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제인-핀치에 있는 정부 지원 주택에 살았는데 이는 굉장히 작아서 농담삼아 벽장이라 불릴 정도였다. 환영위원회는 계란과 토마토를 동네 창문과 문에 던지며 우리들이 옆 동네로 이사가는 것을 저지했다. 참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투쟁했으며 마치 시 대표 레슬링 챔피온이 되기 위한 고된 훈련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이 지역에서 마약은 손쉽게 이용될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별거 아닌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제인-핀치 지역의 중심인물인 J.J.는 평범한 마약거래상이 아니었다. 약간의 근육과 까무잡잡한 피부, 헝클어진 머리의 J.J.는 법망으로부터 이리저리 피한 범죄자들에게는 예민하지만 과묵한 인상을 심어주는 신기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오랫동안 나의 우상이 될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 속에서 J.J.는 멋진 사람이었다. 더욱이 J.J.는 독서를 즐겼다. J.J.가 상의를 탈의한 금발의 여자를 양 옆에 끼고 두꺼운 책 한권을 가슴에 얹어 놓은 채로 지붕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마다 나는 내 방 창문에서 그를 지켜보고는 했었다.

동네에서 우연히 J.J.를 마주칠 기회를 목빠지게 기다리며 점점 더 그에게 매료되었다. 그러나 밤이나 낮이나 심지어 꿈에서 조차도 J.J.와 마주치지 않았다. J.J.와 마주치면 나도 숨쉬는 만큼이나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아가 비록 우리는 야수들이 득실거리는 험난한 세계에 묶여 다른 사람으로 위장되어 살지만 J.J. 당신과 나는 현재보다 더 나은 현실을 개척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하여 서로에게 끌린 소울메이트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느 금요일 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J.J.의 집부터 우리집까지 난 골목길에 책 한 권이 뒤집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처음에 그 책이 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책 하나도 잘 간수하지 못하는 나의 부주의함에 화가 났다. 그러나 책을 들어 표지를 본 후 내 것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했다. 내 책이 아니니 J.J.의 책임이 분명했다. 우리를 갈라 놓았던 벽을 넘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팔에 책을 끼고 담을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책은 마야 엔젤로우 저 ‘나는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가 안다(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라는 얇은 책이었기 때문에 하룻밤새 다 읽을 수 있었다. 문학을 사랑하고 불굴의 성격을 가진 한 어린 소녀가 미국에서 흑인 여자로서 살며 얻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그 소녀는 루소식의 순수함 속에 더이상 한 나뭇가지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날지 않지만 주변 상황과 필요성에 의하여 갇혀버린 새였다. 정해진 틀대로 길러지거나 아니면 죽기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새는 슬픔 밖의 아름다움, 혼돈이 아닌 질서로 서서히 나아간다. 다시 말해 새는 아무런 선택권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였고 J.J.의 이야기였다. 미 아칸소 주에서 자란 흑인 소녀의 눈을 통해 그려진 나 그리고 J.J.의 이야기였다.


다음 날 밤 평소보다 활동적인 경찰들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안고 침대에 누워 다시 한 번 책을 읽었다. 나의 계획은 일단 책을 통달한 뒤 대단한 분석을 도출해내 J.J.에게 들려주어 깊은 인상을 남기자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옷을 빼입고 골목 맞은편 그의 집 앞으로 갔을 때 집 안에서 사람들이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볍게 문을 톡톡 두드렸다. 잠시 기다렸으나 반응이 없어 다시 돌아가려던 찰나 갑자기 문이 세차게 열렸다.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된 여자가 문틀을 메웠다. J.J.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무슨 일이야 꼬맹아?”라고 고함을 질렀다. “J.J.를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제가 그의 책을 가지고 있거든요. 돌려주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자 “J.J.는 더 이상 그 책 필요없다.”라고 울먹이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지난 밤 마약을 거래하러 나갔다 살해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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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후 작가로서의 성공에 실패하고 식당 매니저라는 편한 삶 속으로 내 자신을 감추어 가던 때,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숨겼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풍부한 내면을 볼 수 없으므로 그 어떤 것도 받을 가치가 없다고 최면을 걸었다. 자칭 작가였기에 인정하기 어려웠던 진실은 한번도 가치있는 말을 해본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작가로서의 끝없는 한계에 괴로워하는 28살 청년일 뿐이었다.

토론토 오락 지구의 중심에 자리한 식당은 나름 장사가 잘 되는 편이었고 영화 축제기간인 9월에는 유명인사들을 쏟아내는 리무진과 인도에 줄 지어 선 무명의 측근들로 북적거렸다. 식당에 들어섰을 때 14번 테이블에 눈에 띄는 인물이 앉아 있음을 즉시 알아채고 그 쪽으로 다가갔다. 마야 엔젤로우였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 그러나 오랜 시간 기다려온 이 순간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마냥 일어났다. 그녀의 일행은 하던 말을 끊고 나를 훑어보았다. 그녀의 “내가 당신을 아나요?”라는 권위적인 목소리의 질문은 내가 이 식당의 매니저이고 그녀는 식당에 온 많은 손님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했다.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함께 식사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녀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당신 이 여자 압니까?"라고 물어 나는 “예, 압니다 손님. 저는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14년 전 어느 주말 내 인생을 바꿀만한 이야기를 손님들에게 하기 위해 한 발작 다가섰다.

혼자서 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웨이터 한 명이 접시와 식기들을 치우느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디저트와 커피는 어떻게 하겠느냐며 내 이야기를 방해했다. 마침내 나는 웨이터를 향해 훅 돌아서며 “이봐요! 우리 지금 대화 중인 거 모릅니까? 자리 좀 피해주시죠?”라고 소리쳤다. 어색한 침묵의 장막이 식탁 위로, 나아가 식당 전체로 내려졌다. 웨이터는 조용히 돌아 걸어나갔다. 그녀는 좀 전에 일어난 일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질문 하나로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잘랐다. “저 쪽에 있는 꽃은 여주인이 고른 건가요? 아니면 본인이 직접 고르신 건가요?”.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꽃꽂이 전문가가 와서 바꿔주고 갑니다”. “여자친구가 있으신가요?”. “예, 있습니다”. “여자친구분이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아나요?” 나는 머리를 저었다. “만약 여자친구분이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향기를 묘사해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할 수 있겠습니까?” “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머리 위에 있는 전등이 나갔어요. 전등을 갈아 끼우는 일은 당신이 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웨이터가 하는 일입니다”. “방금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거울이 더럽더군요. 당신이 그 거울을 닦나요?” “아닙니다. 서버가 할 일입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내 얼굴이 다음 질문을 부추겼다. “작가가 되고 싶습니까?” 나는 내 자신 스스로에게 만족스런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지 그녀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려 애썼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면 내 말을 끊었다.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다른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세요”. 나는 그녀에게 식당 경영의 속사정을 설명했다. 지난 날 피자헛에서 접시를 닦던 시절부터 웨이터 보조, 바텐더, 서버, 현재 매니저로서 근무한 시간들을 풀어냈다. “아니요 아니요.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섬기세요. 당신의 연인, 어머니, 말이 나온 김에, 좀 전에 우리 식탁을 치워주려다 당신이 창피를 준 그 분까지 말이에요”. 식탁 주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안다는 듯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일행은 계산서를 요구하고 계산한 뒤 식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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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있어 유일한 현세적 관심사는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진실로 글을 쓰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혼란스런 현실에서 지성적이며 까다로운 어떤 것을 개척해나고 싶다면, 다른 이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아름다움은 모험적인 일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14년이란 시간을 기점으로 나뉜 두 가지 사건에서 마야 엔젤로우는 여태껏 스스로는 어떤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초라한 나를 온화한 방법으로 꼬집었다. 작가는 여행과도 같은 일생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과 가능성에 자신을 가두는 사슬에 담대하게 맞서며 초연해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신발끈을 단단히 메고 첫 발을 내디딜 준비가 되었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방해하는 것에 칼을 들어 올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아니 그러한 때에야 비로소 이 기대치 못한 순간에 노래의 첫 번째 음정이 들려올 것이다. 귀를 가진 만물이 귀 기울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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