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Henry Of The Lost And Found (Korean)

헨리는 말을 더듬었다. 9월의 어느 이른 아침 4학년 이해력 수업에 처음 들어갔을 때 헨리가 말을 더듬는 것을 알았다. 헨리는 책상에 앉아 순교자들에 관한 책을 소리내어 읽고 있었고 바커 선생님은 그런 헨리의 어깨 뒤를 배회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헨리는 모두 문쪽으로 등을 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고 교실에 그 외에 다른 학생은 없었다. “열 명의 캐-캐-캐나다 성인들이 카-카-카톨릭 교-교-교회 안에 있습니다. 8명은 시-시-신 프랑스 저-정-정착 중 교-교-교회가 수-순-순교자로 여기는 우-수-수사들이-이-이었습니다.” 바커 선생님은 헨리의 말을 끊지 않고 이따끔씩 “음~” “네~” 등 추임새만 넣을 뿐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헨리의 목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었다. 헨리는 반 친구들 누구와도 이야기 나누지 않았고 선생님들도 자신들의 질문에 헨리가 대답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가끔씩 헨리가 유령처럼 학교 복도에 출몰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애정에서 기인한 두려움에 대해 댓가를 치르기 거부하는 유령 마냥.헨리와 나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 헨리는 평생 미시사가에서 살았고 이동이라고 해봤자 미시사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산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그 해가 캐네디언 마터즈에서 보낸 첫 번째(이면서 마지막) 해였고 헨리는 유치원때부터 캐네디언 마터즈에 다녔다. 나는 간단한 영어 문장도 거의 구사할 수 없는 이민자였고 헨리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폴란드계 캐네디언이었지만 폴란드어는 거의 구사할 줄 몰랐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우리가 학교에 있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나중의 이유다. 영어를 속 시원히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의도치 않은 결속력을 맺는데 윤활유 역할을 해주었다. 쉬는 시간에 우리는 종종 다친 동물들 마냥 운동장 변두리를 빙빙 돌며 서로를 쫓았다. 헨리가 주시하는 것을 피하며 의도치 않게 깊게 드리워진 그의 고독함은 무엇인지 캐내기 위해 나를 가장(假裝)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런 시간은 바람이 세게 불던 어느 10월 아침,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갑작스레 바람이 불더니 사방으로 숙제를 흩뿌리며 내 바인더를 날려버렸다. 숙제들을 쫓아 간신히 게 중 한 장을 발로 밟으며 이미 저만치 날아가고 있는 나머지 종이를 맥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내 숙제에 일어난 일을 바커 선생님께 설명할 것을 생각하자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그 때 운동장 반대편을 가로질러 나에게 걸어오는 희미한 물체가 보였다. 여윈 몸에 둘러진 옷이 바람에 펄럭이며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걸어오고 있는 헨리였다. 하얀색 종이가 헨리의 손에 꼭 쥐어져 있었다. 헨리가 나에게 내 숙제를 건네주고 나는 고맙다고 하였다. 헨리는 웃어 보였고 교실로 조용히 걸어 갔다. 우정은 그렇게 잉태됐다.
4학년은 어린아이의 장난이 젊은날의 객기로 굳어지는, 그리고 약자를 괴롭히는 골목대장이 어떤 분위기 속에서 한 때 단지 무자비한 공포 대상에 불과했던 게 현실화 되는 듯한 시기이다. 크리스마스 하루 전 날 점심 시간에 나는 헨리가 존경하는 바커 선생님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기 위해 함께 쇼핑 몰에 갔다. 바커 선생님은 헨리가 4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는 법정대리인이었다. 주차장을 지나가고 있을 때 4명의 아이들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길을 방해했다. 그 패거리의 대장은 학교 불량배 조디였다. 한 크기 하는 얼굴과 새까만 눈을 가진 거구의 백인 조디는 암암리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절도광이었다. 조디는 교실보다 쇼핑 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얘들아 여기 좀 봐. 노랭이랑 지체아랑 같이 있네!” 다른 패거리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조디는 장갑으로 내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너네 지금 쇼핑 몰에 뭐 훔치러 가는거지? 그치?”라고 말했다. 조디의 숨이 벌렁 거리는 콧구멍 밖으로 담배 연기처럼 요동쳤다. 주위 모든 긴장감이 내 얼굴와 조디 얼굴 사이의 얇은 공간으로 집중되는 듯 했다. 바로 그 때 적어도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헨리가 그 공간으로 한 발자국 들어왔다. 헨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쓰고 있던 모자를 약간 벗더니 시선을 조디에게 고정했다. “할 말이라도 있냐? 멍청아?”라고 말하는 조디는 좀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몇 겁의 시간처럼 느껴진 침묵을 깨고 헨리가 입을 열었다. 가엾은 심정이 묻어나며 명쾌하게 그리고 똑똑히 발음 된 헨리의 말은 마음 속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끌어져 올라온, “그렇게 살지마”였다. 비록 헨리의 말은 속삭임에 가깝긴 했지만 그 두 마디는 지구를 뒤흔들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따끔씩 주자창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해 그 곳에 있던 아이들은 돌처럼 굳어 서 있었다. 헨리는 여전히 조디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다시 모자를 매만지더니 다른 아이들을 밀치고 가던 길을 갔다. 나는 헨리를 따라갔다. “이 머저리가!”는 조디가 마지막으로 남긴 애처로운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 조차도 자동차와 사람들 말 소리에 희미했다. 그 날 밤 침대에 누워 헨리의 용기와 그 날의 공기만큼이나 상쾌했던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자 내가 헨리를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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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방학이 왔다 갔지만 헨리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바커 선생님께 가서 헨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여쭈어보았다. 선생님은 내 질문에 놀란 기색으로 “나는 네가 헨리와 친하다고 생각했었는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방학동안 헨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주셨다. 헨리가 교회에서 페인트칠을 한 후에 병원에 실려가 몇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그가 신경계 관련 희귀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했다. 바커 선생님은 그 병이 헨리의 아버지가 평생 겪었던 것과 같은 병이라고 했다. 헨리는 집에서 요양 중이라고 했지만 바커 선생님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요양’이란 단어는 선생님이 말하려 했던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던 했던 단어들은 기껏해야 병 그리고 죽음과 관련한 단어들로 참 애매한 의사 소통 수단이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헨리의 집 주소를 물었다.헨리의 집은 학교에서 세 블럭 떨어진 곳에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헨리의 할머니였던 것 같은 한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헨리가 있느냐고 묻자 시선을 아래로 떨어 뜨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몇 발자국 비켜주었다. 집 안에서는 소세지와 마늘을 넣고 삶은 듯한 썩은 우유 냄새가 났다. 거실을 지나 걸었다. 한 쪽 벽에는 로자리오가 달린 커다란 나무 십자가가 걸려있었고 다른 한 쪽 벽에는 비닐로 감싸진 쇼파 위로 잘생긴 젊은이의 흑백 졸업사진이 걸려 있었다.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은 행복하고 성공적인 미래를 다짐하고 있는 듯했다.그 분이 바로 헨리의 아버지구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번뜩 스쳤다. 할머니는 헨리가 하얀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리고 누워있는 방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헨리는 자고 있었다. 이불 위로 헨리 몸의 윤곽이 들어났다. 마지막으로 본 날 이후로 헨리는 놀랄만치 몸집이 작아져 있었다. 항상 몸집이 작기는 했지만 헨리는 어느 평범한 2학년 아이의 몸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헨리 옆, 노란 불빛 아래 탁상 위에는 성경책이 놓여있었다. 이해력 수업 시간에 쓰던 순교자들에 관한 책은 헨리의 오른손에 꼭 붙들어져 있었다. 헨리는 천천히 눈을 뜨고 초점을 맞추는 듯 눈동자를 움직이더니 내게 창백한 미소를 보였다. 나는 그 때서야 이 전까지 헨리의 눈동자 색깔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록색의 눈동자 중 오른쪽이 왼쪽보다 약간 더 푸른 듯 했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 어-어-엄마 봐-봤-봤어?” 헨리의 눈썹이 침대 반대편에 앉아 있는 중년의 여성 쪽으로 들렸다. 헨리의 어머니는 서른 다섯살 보다는 더 되보이긴 했지만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베어 있었다. 평범한 시간의 흐름 때문이 아닌 자신의 인생에 닥친 가혹한 고통 때문에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남편의 잔혹한 사고를 목격할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이제는 하나있는 아들 마저도 자신의 눈 앞에서 쇠약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녀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임이 분명했다. 젊은 시절 헨리의 어머니가 아름다웠다면 누구도 그 당시 헨리 옆에 앉아 꼼짝 않던 얼굴을 보고 젊은 날의 그녀를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헨리의 어머니는 자신이 움켜 잡을 수 있었던 인생을 넘어 그것을 포기한 채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였다. 함께 있는 동안 헨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오히려 헨리 보다도 더 말을 아꼈다. 아홉살도 다른 이의 불행한 일은 애써 건드리지 않으려 할 때 상투적인 빈 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안다. 예정되어진 상실이 임박해졌음을 느꼈을 때 연민과 슬픔의 독특하고 개인적인 표현은 그 후에 온다. 시간이 늦어 인사를 한 뒤 곧 다시 보러 오겠다고 말했을 때의 헨리 표정, 맘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고마움으로 빛이 나던 헨리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거실에서 헨리의 어머니가 종이 쪽지에 무언가를 급히 쓰더니 내게 건네주었다. “헨리가 항상 네 얘기를 하더구나. 너는 그 아이의 유일한 친구란다. 언제든지 전화하렴. 헨리가 네 목소리를 들으면 무척 기뻐할거야.”라는 말과 함께.
헨리는 그 해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다시 찾아가지도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 해 여름 우리 가족은 그 시골마을 떠나 혼잡한 도시의 심장으로 다시 한 번 더 이사했다. 헨리에 대한 것은 거의 잊어버렸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느라 정신 없었고 바뀐 환경에 내 자신을 적응시키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교과서가 헨리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데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캐나다의 순교자들에 관한 이해력 시간 수업 교재에 노랗게 바랜 쪽지 하나가 꽂혀 있었다. 토론토 시내에 있는 나의 집에서 헨리네 전화 번호를 눌렀고 이윽고 반대편 전화선 끝에서 들려오는 헨리 어머니의 목소리는 놀랍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투는 그 동안 변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 때문인지 무겁게만 느껴졌다. 나의 영어가 훨씬 나아졌다는 것과 내 어머니가 나를 많이 자랑스러워 하겠다는 가벼운 말을 건넸다. 마치 자신의 아들 헨리가 침대에서 시들어가며 누워있는 동안 우리가 거실에서 나눴던 마지막 대화를 계속하는 듯 했다. “너는 헨리의 유일한 친구였단다. 전화해주어서 고맙구나.”라고 그렇게 헨리의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내게 전했다.
헨리는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후 1년쯤 뒤에 세상을 떠났다. 헨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학교 사람은 바커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고작이었다. 전화를 끊고 아주 오래 전 내 친구 세인트 헨리가 쇼핑 몰 밖에서 세상에서 제일 못난 아이들과 나 사이에 한 발자국 끼어 들던 장면을 회상했다. 그 쇼핑 몰 밖에서 내가 감당해야만 했던 순간을 자신이 대신 짊어진 헨리를 회상했다. 속삭임이었지만 마치 세상 꼭대기에서 우리 주위에 서 있던 사람뿐만 아니라 성인 그리고 죄인,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 같았던 헨리의 그 말, “그렇게 살지마”, 이 두 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이는 마치 헨리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은 것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Prodigal Son (Korean)

예수는 죄인과 세금 징수원 무리 앞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재미있는 우화를 이야기하였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우화는 전통적으로 사순절 세 번째 토요일 미사에서 읽힌다. 이야기는 두 아들을 가진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둘째 아들은 유산의 분배를 요구하고 먼 곳으로 떠나지만 “방종한 삶”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돼지 목동으로서의 삶도 외줄 타듯 산 둘째 아들은 그러한 삶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아버지는 “죽었다 살아난 아들을 위하여, 잃어 버렸다 다시 찾은 내 아들을 위하여”란 마음으로 자식의 귀향을 환영하는 잔치를 호화스럽게 연다. 성경에서처럼 이야기가 아버지의 관점이 아닌 아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되어 진다면 “나는 어떻게 자라 어떻게 현명해졌나”, “이기심과 허영심, 욕심에서 시작 된 인생 여정이 감사와 겸손, 순종에 도달하기까지”라는 계고적 이야기쯤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는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얻은 새로운 깨달음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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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내린 1975년 봄, 이제 막 캐나다는 댐 짓는 설치동물 비버를 이 땅의 공식적 상징물로서 지정했고 CN타워는 완공되었으나 아직 대중들에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수상은 피에르 엘리오트 트루디아우였으며 6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내가 태어났던 날 쯤, 피에르 정부는 두 개 언어를 공식적으로 상용하기로 하는 ‘공식 언어 법령’을 제정한다. 이 법령은 영어와 프랑스어 외 다른 언어는 2급으로 분류함을 내용으로 한다. 피에르 정부는 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쟁들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이었으나 이민자들의 모국어에 관한 시각에서 보자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끔 하는 조치였다.
영어란 것과 만난 첫번 째 순간은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발을 딪기도 전에 일어났다. 태평양 3만 피트 상공에서 내 방광이 SOS를 외쳤다. 놀스웨스트 에어라인 승무원이 나를 화장실로 안내했다. 파란색 물이 쥐똥만큼 담겨있어 신기하게 생긴 변기에 앉아 볼 일을 보고 승무원이 일러준대로 또 신기하게 생긴 레버를 눌러 내렸다. 그러자 변기가 한 마리 괴물같은 거머리처럼 ‘히익’ 소리를 내며 벌어진 입 속으로 공기를 빨아 들였다. 꼭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뿜어져 나왔고 화장실 구석에 움츠려 소리를 지르자 승무원이 문을 벌컥 열고 나를 안아 주었다. 그녀는 내 귀에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속삭여주었다. 그러나 그 억양은 내게 안정을 찾아 주었고 부드러운 소리같은 따뜻한 후광에 둘러진 느낌이었다. 분명한건, 그 승무원은 제3세계 나라의 어느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의 호들갑을 다루는데 익숙하다는 것이었으며 그런 아이의 변기 사용 능력은 땅에 파진 구멍에 쭈그리고 앉아 볼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내가 홀딱 빠졌던 것이 그 승무원이었는지 아니면 승무원이 내뱉은 말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래저래 뒤죽박죽된 우리에게 다가오는 다른 많은 이들처럼 이 사랑의 사건은 일찍 실험대에 올려진 것이다. 새로 발견한 내 열정은 새로운 집, 캐나다로 가는 여정의 마지막 길에서 겨우 만들어진 것이다.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스탑오버 하는 동안 가족들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몇달 전 먼저 도착해 미 대륙에 잘 내렸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에게 전화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시 갓난 아기였던 남동생을 한 팔로 안고 네 살난 여동생을 다른 한 쪽으로 꽉 붙들고 공항을 두리번 거렸다. 나는 이유식과 무거운 기저귀 가방을 어깨에 들처메고 그 셋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깔깔대는 아이들이 몰려있는 군중 속에 빨간 코에 다채색이 가발을 쓰고 펄럭이는 신발을 신은 광대들이 나타나 우리 앞을 펄쩍펄쩍 뛰며 지나갔다. 나는 광대들이 코너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문득 나는 사람들 다리와 여행가방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나 자신을 깨달았다. 가족들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이리저리 몇 발자국 돌아다녀봤지만 같은 자리만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 방향으로 걷고 있는 백인 노 부부에게 다가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결한 한국말로 나는 가족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부부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다시 멍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남편은 “저 쪽”이라는 몹시 포괄적 방향을 일러주고 부부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코너로 사라졌다. 노 부부가 알려준 방향으로 내가 찾고 있는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내 안의 모든 삶이 내게서 떠난 것 같은 기분으로 과감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주 지칠 대로 지쳤 있었다. 대기실에서 빈 의자를 하나 발견하고 다시는 어머니와 남매들을 볼 수 없다는 간헐적으로 폭발하는 공포를 억누르다가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낯선 흑인 한 명과 백인 한 명 때문에 잠을 깼다. 그 둘은 회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백인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내 팔을 흔들었다. 한 단어가 막연하게 내 이름처럼 들렸다. 여러 개의 음절과 자음 모양으로 된 그 말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소리는 부드럽게 들리지 않았고 모든 단어는 들쭉날쭉한 날만 섰을 뿐 내게 어떤 의미도 없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그 둘은 나를 아랫층으로 데리고 내려갔다. 뜨거운 백열등이 빛나고 있는 사무실 쇼파에서 어머니는 잠들어 있는 남동생과 여동생 사이에 꽂꽂이 앉아 계셨고 이내 멈춰있던 내 마음은 환호로 가득해졌다. 나를 보자 어머니의 눈은 안심과 격분으로 빛이 났다. 머리 뒤로 울려퍼지던 내 몸을 찰싹찰싹 때리는 소리는 미국에 우리 가족이 그렇게 본의 아니게 잠시 머물게 된 동안의 기억이 되었다. 그렇게 시기 적절치 못한 나의 호기심은 토론토 행 연결 비행기편을 놓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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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9월 세인트 티모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였고 이는 나의 기독교 생활의 시작을 여는 것이었다. 그 후 4년 동안 수호 성인인 세인트 케빈, 세인트 엔서니, 캐네디언 마터즈, 세인트 윌프레드의 이름을 딴 네 곳의 학교를 다녔다. 이 때는 막연한 동경심 덕택에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던 불안함을 잊고 살았다. 세인트 티모티 학교에서의 첫 번째 일주일이 끝나갈 때쯤 험프리 선생님은 여름 방학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왔다. 나는 무엇에 동의하는가는 상관없이 예의바르게 고개만 끄덕였다. 선생님은 교실 앞으로 나를 몰아 정면으로 학생들과 마주하게 한 뒤 그저 나만 두고 자리를 비켰다. 연이어 교실을 휘감은 침묵 가운데 나는 그저 뒤에서 가만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거대한 칠판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붉은 볼의 둥근 눈을 가진 6살짜리 아이들이 눈 하나 깜짝 않고 나를 응시했다. 나는 원하지 않게도 반 친구들의 관심을 잘 집중시켰다. 그들은 희안한 이름을 가진 이상한 내가 공룡과 요정, 유니콘이 살고 있는 곳으로 자신들을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피가 뇌로 솟구치는 것 같은 느낌에 콧구멍으로 바람까지 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입을 열었지만 가장 먼저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한국어였다. 물 밖으로 튀어나와 퍼덕이는 물고기 마냥 교실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말을 멈췄다. 처음에는 교실 뒤에서 낄낄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다음에는 교실 전체가 웃음 바다가 되었다. 선생님은 자를 들어 책상을 몇번 탁탁 치면서 조용히 하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제외한 교실 전체가 웃음 소리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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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과 카톨릭 기도문이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두 가지 모두 ‘나의’라는 단수형보다 복수형 소유격 ‘ 우리의’란 단어를 더 애용하며 1인칭은 종종 생략해 말한다. “나는 미사에 참례한다”라는 간단한 말조차도 한국인과 독실한 카톨릭신자들에게는 어색하고 꺼림칙하게 들린다. 그들에게는 “우리는 미사에 참례한다” 혹은 “우리가 미사에 참례했다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속 후련한 말하기 방식이다. ‘우리’를 가지고 ‘나’를 대신 했다는 것은 높은 무의식 상태를 반영한다. 인간은 돼지 목동이나 죄인보다 왕이나 신과 더 가까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거의 문장을 “나”로 시작하지 않는다. 여름 방학 동안 “나는” 이걸 했다, “나는” 저걸 했다는 이야기를 얼빠진 청중들 앞에서 말하느니 차라리 커다란 칠판 뒤로 사라져 버리고 싶을 것이다. 영어와의 최초 대면은 내가 세상과 나눴던, 이르긴 했지만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해주었던 언어를 못 쓰게 만드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이는 나를 험난한 길로 등 떠밀었고 자기애와 더불어 외로움까지 선사해주었다. 비록 비종교 공립학교에서 우리 가족의 유목적 생존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이는 내 인생에 자리잡을 불길한 징조, 즉 부모님과 나 사이에 드리워진 두꺼운 유리 벽같은 언어의 장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영어와 살아가기 위한 투쟁같은 시간의 마지막쯤에는 더 이상 내게 자연스럽지도 친근하지도 않은 모국어와 단호하게 작별을 고했다. 이런 나의 결정은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당신 자식이 부모와의 소통 방법을 포기했다는 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주길 바라는 희망사항을 피어나게 했지만 나는 돌아서지 않았다.

Breaking Into Song (Korean)

14살이 되던 해 여름, 이미 오래 전 소식이 끊긴 아버지, 입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 죽을 힘을 다해 일하는 어머니, 채워지지 않는 부모의 빈 자리로 인해 사나워지고 드세진 삼형제들이란 그림자는 내게 어떤 피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음 일러주는 신호등과 같았다. 그 해는 내가(사실상 내가 알던 다른 모든 이들 또한 그랬듯) 십대로서 가지는 막연한 환상과 만들어진 고뇌를 두고 애타하던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이해한다면 내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제인-핀치에 있는 정부 지원 주택에 살았는데 이는 굉장히 작아서 농담삼아 벽장이라 불릴 정도였다. 환영위원회는 계란과 토마토를 동네 창문과 문에 던지며 우리들이 옆 동네로 이사가는 것을 저지했다. 참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투쟁했으며 마치 시 대표 레슬링 챔피온이 되기 위한 고된 훈련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이 지역에서 마약은 손쉽게 이용될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별거 아닌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제인-핀치 지역의 중심인물인 J.J.는 평범한 마약거래상이 아니었다. 약간의 근육과 까무잡잡한 피부, 헝클어진 머리의 J.J.는 법망으로부터 이리저리 피한 범죄자들에게는 예민하지만 과묵한 인상을 심어주는 신기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오랫동안 나의 우상이 될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 속에서 J.J.는 멋진 사람이었다. 더욱이 J.J.는 독서를 즐겼다. J.J.가 상의를 탈의한 금발의 여자를 양 옆에 끼고 두꺼운 책 한권을 가슴에 얹어 놓은 채로 지붕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마다 나는 내 방 창문에서 그를 지켜보고는 했었다.

동네에서 우연히 J.J.를 마주칠 기회를 목빠지게 기다리며 점점 더 그에게 매료되었다. 그러나 밤이나 낮이나 심지어 꿈에서 조차도 J.J.와 마주치지 않았다. J.J.와 마주치면 나도 숨쉬는 만큼이나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아가 비록 우리는 야수들이 득실거리는 험난한 세계에 묶여 다른 사람으로 위장되어 살지만 J.J. 당신과 나는 현재보다 더 나은 현실을 개척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하여 서로에게 끌린 소울메이트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느 금요일 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J.J.의 집부터 우리집까지 난 골목길에 책 한 권이 뒤집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처음에 그 책이 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책 하나도 잘 간수하지 못하는 나의 부주의함에 화가 났다. 그러나 책을 들어 표지를 본 후 내 것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했다. 내 책이 아니니 J.J.의 책임이 분명했다. 우리를 갈라 놓았던 벽을 넘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팔에 책을 끼고 담을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책은 마야 엔젤로우 저 ‘나는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가 안다(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라는 얇은 책이었기 때문에 하룻밤새 다 읽을 수 있었다. 문학을 사랑하고 불굴의 성격을 가진 한 어린 소녀가 미국에서 흑인 여자로서 살며 얻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그 소녀는 루소식의 순수함 속에 더이상 한 나뭇가지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날지 않지만 주변 상황과 필요성에 의하여 갇혀버린 새였다. 정해진 틀대로 길러지거나 아니면 죽기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새는 슬픔 밖의 아름다움, 혼돈이 아닌 질서로 서서히 나아간다. 다시 말해 새는 아무런 선택권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였고 J.J.의 이야기였다. 미 아칸소 주에서 자란 흑인 소녀의 눈을 통해 그려진 나 그리고 J.J.의 이야기였다.


다음 날 밤 평소보다 활동적인 경찰들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안고 침대에 누워 다시 한 번 책을 읽었다. 나의 계획은 일단 책을 통달한 뒤 대단한 분석을 도출해내 J.J.에게 들려주어 깊은 인상을 남기자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옷을 빼입고 골목 맞은편 그의 집 앞으로 갔을 때 집 안에서 사람들이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볍게 문을 톡톡 두드렸다. 잠시 기다렸으나 반응이 없어 다시 돌아가려던 찰나 갑자기 문이 세차게 열렸다.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된 여자가 문틀을 메웠다. J.J.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무슨 일이야 꼬맹아?”라고 고함을 질렀다. “J.J.를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제가 그의 책을 가지고 있거든요. 돌려주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자 “J.J.는 더 이상 그 책 필요없다.”라고 울먹이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지난 밤 마약을 거래하러 나갔다 살해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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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후 작가로서의 성공에 실패하고 식당 매니저라는 편한 삶 속으로 내 자신을 감추어 가던 때,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숨겼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풍부한 내면을 볼 수 없으므로 그 어떤 것도 받을 가치가 없다고 최면을 걸었다. 자칭 작가였기에 인정하기 어려웠던 진실은 한번도 가치있는 말을 해본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작가로서의 끝없는 한계에 괴로워하는 28살 청년일 뿐이었다.

토론토 오락 지구의 중심에 자리한 식당은 나름 장사가 잘 되는 편이었고 영화 축제기간인 9월에는 유명인사들을 쏟아내는 리무진과 인도에 줄 지어 선 무명의 측근들로 북적거렸다. 식당에 들어섰을 때 14번 테이블에 눈에 띄는 인물이 앉아 있음을 즉시 알아채고 그 쪽으로 다가갔다. 마야 엔젤로우였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 그러나 오랜 시간 기다려온 이 순간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마냥 일어났다. 그녀의 일행은 하던 말을 끊고 나를 훑어보았다. 그녀의 “내가 당신을 아나요?”라는 권위적인 목소리의 질문은 내가 이 식당의 매니저이고 그녀는 식당에 온 많은 손님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했다.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함께 식사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녀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당신 이 여자 압니까?"라고 물어 나는 “예, 압니다 손님. 저는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14년 전 어느 주말 내 인생을 바꿀만한 이야기를 손님들에게 하기 위해 한 발작 다가섰다.

혼자서 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웨이터 한 명이 접시와 식기들을 치우느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디저트와 커피는 어떻게 하겠느냐며 내 이야기를 방해했다. 마침내 나는 웨이터를 향해 훅 돌아서며 “이봐요! 우리 지금 대화 중인 거 모릅니까? 자리 좀 피해주시죠?”라고 소리쳤다. 어색한 침묵의 장막이 식탁 위로, 나아가 식당 전체로 내려졌다. 웨이터는 조용히 돌아 걸어나갔다. 그녀는 좀 전에 일어난 일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질문 하나로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잘랐다. “저 쪽에 있는 꽃은 여주인이 고른 건가요? 아니면 본인이 직접 고르신 건가요?”.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꽃꽂이 전문가가 와서 바꿔주고 갑니다”. “여자친구가 있으신가요?”. “예, 있습니다”. “여자친구분이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아나요?” 나는 머리를 저었다. “만약 여자친구분이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향기를 묘사해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할 수 있겠습니까?” “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머리 위에 있는 전등이 나갔어요. 전등을 갈아 끼우는 일은 당신이 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웨이터가 하는 일입니다”. “방금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거울이 더럽더군요. 당신이 그 거울을 닦나요?” “아닙니다. 서버가 할 일입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내 얼굴이 다음 질문을 부추겼다. “작가가 되고 싶습니까?” 나는 내 자신 스스로에게 만족스런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지 그녀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려 애썼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면 내 말을 끊었다.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다른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세요”. 나는 그녀에게 식당 경영의 속사정을 설명했다. 지난 날 피자헛에서 접시를 닦던 시절부터 웨이터 보조, 바텐더, 서버, 현재 매니저로서 근무한 시간들을 풀어냈다. “아니요 아니요.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섬기세요. 당신의 연인, 어머니, 말이 나온 김에, 좀 전에 우리 식탁을 치워주려다 당신이 창피를 준 그 분까지 말이에요”. 식탁 주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안다는 듯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일행은 계산서를 요구하고 계산한 뒤 식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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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있어 유일한 현세적 관심사는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진실로 글을 쓰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혼란스런 현실에서 지성적이며 까다로운 어떤 것을 개척해나고 싶다면, 다른 이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아름다움은 모험적인 일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14년이란 시간을 기점으로 나뉜 두 가지 사건에서 마야 엔젤로우는 여태껏 스스로는 어떤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초라한 나를 온화한 방법으로 꼬집었다. 작가는 여행과도 같은 일생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과 가능성에 자신을 가두는 사슬에 담대하게 맞서며 초연해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신발끈을 단단히 메고 첫 발을 내디딜 준비가 되었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방해하는 것에 칼을 들어 올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아니 그러한 때에야 비로소 이 기대치 못한 순간에 노래의 첫 번째 음정이 들려올 것이다. 귀를 가진 만물이 귀 기울이기 시작할 것이다.